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구 마르크스주의 (문단 편집) === 프랑스 === 한편 프랑스에서는 [[알렉상드르 코제브]]를 통해 새로이 해석된 헤겔이 [[현상학]]과 함께 [[실존주의]]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장폴 사르트르]]와 [[모리스 메를로퐁티]] 등의 실존주의는 일종의 마르크스주의적인 경향을 띄게 된다. 정확히는 실존주의에 고유한 정치 이데올로기가 없었기에 [[마르크스주의]]로 그것을 대신한 것에 가깝다. [[앙드레 브르통]]과 같은 [[초현실주의]]또한 이러한 이유로 프랑스 공산당에 가입하는 등 마르크스주의를 수용하려 했으며, 초현실주의자 본인들은 나아가 자신들의 이론 자체가 [[변증법적 유물론]]과 일치한다고 보았다. 이와 더불어 프랑스에서는 현상학과 마르크스주의를 접합하려는 시도들이 있기도 했다. 사르트르는 이후 일종의 전회와 함께 『방법의 탐구』, 『변증법적 이성비판』을 내면서 현상학에서 마르크스주의로 초점을 이동시킨 실존주의를 전개했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실존주의는 마르크스주의의 보조장치로, 마르크스주의와 함께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것인 동시에 마르크스주의가 독단화되지 않도록 궤도를 잡아주어야 하는 것이다. 후기 사르트르의 마르크스주의는 실존주의의 유명세에 묻혀 거의 주목받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그 밖에 앙리 르페브르는 공간을 주제로 하여 일종의 마르크스주의적 지리학을 선보였으며, 기 드보르의 상황주의 인터내셔널과 같이 좌익공산주의와의 연관이 밀접한 경우도 있었다. 또한 프랑스의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알제리 전쟁]]에 반대하는, [[모리스 블랑쇼]]가 작성한 이른바 "121인의 선언"에 참여하기도 했다. 실존주의가 [[구조주의]]에 의해 침몰한 뒤, [[구조주의]]와 [[가스통 바슐라르]]의 인식론적 단절 개념에 영향을 받은 [[루이 알튀세르]]는 헤겔주의적인 청년 마르크스와 과학적인 장년 마르크스 사이에는 단절이 존재한다는 해석을 바탕으로, 주체는 구조의 효과라는 구조주의적인 마르크스주의를 제시했다. 알튀세르주의는 프랑스 정치철학에서 마르크스주의의 자리를 차지하여 이후 프랑스 좌익 철학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독해는 마르크스주의 특유의 고유한 방법론적 색체를 제거함으로서 마르크스주의의 퇴조에 일조하는 결과를 가져왔는데, 이는 8090년데 한국의 마르크스주의사에서도 동일하다. 알튀세르의 주장 중 초기 마르크스와 후기 마르크스 사이에 단절이 존재한다는 주장은 『1844년 경제학-철학 수고』가 출판되면서 전개된 마르크스 해석 상의 논쟁과 관련이 있는데, 이러한 논쟁에서 쟁점이 된 것은 헤겔의 영향이 짙게 나타나는 초기의 마르크스와 경제학에 초점을 둔, "과학적"인 후기의 마르크스 사이의 연속성이 존재하느냐, 그리고 연속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둘 중 어느 마르크스에 집중해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이러한 논쟁은 엥겔스의 『자연변증법』을 수용하여 변증법과 과학을 분리하지 않고 오히려 일치하는 것으로 해석한, 그러니까 "과학적 사회주의"가 변증법적인 사회주의라고 해석한 소련 마르크스주의에서는 성립 자체가 어려운 문제였지만[* 이쪽은 아예 양자역학을 비롯한 자연과학의 성과들을 헤겔 논리학의 언어로 설명하는 기염을 토했다. 물질의 존재 양식은 모순이기에 전자의 위치가 확률 함수로 서술되는 것은 전자의 운동이 필연성과 우연성의 대립을 내포하는 것이고 광자의 입자성과 파동성은 대립하는 두 요소의 변증법적 통일이 광자란 것이며 어쩌구 저쩌구...],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대부분이 엥겔스와 마르크스를 분리하고 — 나아가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을 분리하고 — 변증법은 사회에만 적용된다는 견해를 취했기에 이러한 논쟁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입장은 존 벨라미 포스터를 비롯한 비교적 최근의 생태 마르크스주의가 대두되면서 점차 극복되어가는 추세이다. 알튀세르의 주장은 헤겔 철학과 단절하여 "과학적"인 후기 마르크스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해석은 문헌학적으로는 일반적으로 근거가 없는 해석으로 여겨진다. 반면 알튀세르와 반대되는 입장을 보인 이들도 있었는데, 아니 사실 이러한 경우가 대부분인데, 주로 사르트르나 [[헤르베르트 마르쿠제]] 등의 경우가 그러하다. 이러한 입장은 마르크스의 "실천" 개념에 주목하여 인간 주체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입장으로, 헤겔적 마르크스주의 혹은 휴머니즘적 마르크스주의라고 불리기도 한다.[* 다소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주체사상]]이 이러한 경향과 많은 유사성을 보이기도 한다. 주체로서의 인간에 주목하는 식의 맑스주의라는 공통점이 있기에...]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